3과
성만찬
아이샤 브룩스 라이틀
I. 개회 기도
은혜와 초대의 하나님,
저희 앞에 사랑과 기쁨과 평화가 가득한 식탁을 차려주 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존재와 목적과 권능으로 저희가 양육되도록 그 식 탁으로 초대해주셨습니다.
당신이 선하심을 맛보고 볼 수 있는 강인함을 주소서.
저희도 충분히 선하다고 당신께서 주장해주셨음을 알도 록 하소서.
저희를 지명하시고 당신 것이라 주장하신 세례의 물에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성스러운 물을 통해서 저희는 당 신의 선함과 자비를 실천하도록 구별되고 봉인되었습니 다. 저희는 당신 것이옵고, 언약의 자녀이며, 믿음의 사 람입니다.
지금도 그러하고 영원히 그러합니다.
평화의 물로 저희를 다시 씻어주소서.
새롭게 하는 그 물로 저희를 다시 소생시키소서.
정의와 용감한 연민의 물로 저희 잔을 채우소서. 저희가 만나는 모든 생명에게 그 물이 넘쳐흐르도록 가득 채워 주소서.
저희 입술에 닿고 배를 채우는 일용할 양식과 음료로서 하루종일 저희를 먹이시고 양육하소서.
저희가 물을 보고 느끼는 순간들을 통해, 저희가 세계를 기억하게 하소서. 저희가 아름답고 완전하며 온전히 당신 의 것임을 알게 하소서.
일용할 양식과 음료를 찾지 못하는 이를 위해서, 새롭게 하는 물을 느끼지 못하는 이를 위해서, 저희가 싸우고 일 하고 기도하게 하소서. 모두가 충족하고 평화로울 때까 지 기도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II. 성례전의 실천
성례전에 참여하라
개혁 전통 안에서 성직자가 되면, 성례전에 관한 풍부한 언어와 이미지를 사용하게 된다. 세례와 성찬이 보이지 않는 은혜의 보여주는 상징이라는 점을 배우고 증언한 다. 성례전을 통해서 우리가 은혜를 접근 가능할 방식으 로 볼 수 있음을 주장하는 교리를 배웠다. 은혜는 하나님 사랑의 선물이다. 우리는 이를 위해 일할 수 없다. 우리 는 그것을 쟁취할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을 만질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특별한 방식으로 하나님 사랑을 경험하 는 기회는 성례전을 통해서이다. 규례서를 통해서도 우리 는 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성례전은 교회의 일반 예배라는 상황 속에서 행 하는 물리적 표시이며, 동시에 영적 선물이고, 기 도로 둘러 싸인 말씀과 행동이 포함된다. 성례전 에서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선포하기 위해 일 상적인 것들 물, 떡, 포도주 등-기본 요소-이 사용 된다.1?
나는 이 구절을 좋아한다. 일상적인 사물이 하나님의 특 별한 사랑을 선포하기 위해 사용된다. 이 언어는 우리가 성례전에 온전히 참여하도록 초대한다. 일상적인 것이 특 별한 것으로 변화하는 것, 이것은 일상과 평범한 사물들 안의 하나님의 특별한 행위를 보자고 초대하는 것이다. 이 초대는 성례전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새롭게 되자는 것이다. 성례전에 참여함으로써 우 리는 성례전의 온전한 의미를 실천하도록 초대받는다.
목사인 나는 성례전을 집행하는 일에 몰두한 나머지, 성 례전에 온전히 참여하는 것의 의미를 잊어버린 적이 있 음을 고백해야 한다. 예배 인도자에게는 그 날을 진행하 고 준비하는 데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유혹이 있을 수 있 다. 예배 예식이 옳은지 확인하고 싶어한다. 각 가족이 제 자리에 있고 호명할 때 제자리에 와서 서는지 확인하고 싶어한다. 장로와 집사가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세례 전 진행 지침에 방해가 되지 않아야 할텐데 생각한다. 솔 직히 나만 이렇게 과정에 마음이 뺏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예배 인도자나 참석자로서 성례전에 증인으로
있다고 해서, 우리가 성례전 동안 온전히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주위 환경을 잘 인지하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잠시 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빵을 쪼개고 구원 의 잔을 들어올리고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물을 부을 때,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을 감지해야 한다.
1. 미국장로교, 규례서 (2019-2021), W-3.0401.
2. 미국장로교, 규례서 (2019-2021), W-3.0503.
III. 참고 성경 구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 로다.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 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 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시편 23)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34:8)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 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 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이사야 43:2)
IV. 예화
나는 유아 세례에 참석하면서 기쁠 것이라고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 공적인 신앙 고백을 하는 제자들을 세례주는 것을 강조하는 침례교인으로 살았다. 어려서부터 이미 세례가 축복이고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또한 개혁주의 예배와 성례전을 올바르게 집행하는 방법에 관한 수업을 신학교에서 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우리는 어떻게 아기를 붙잡아야 하는지, 적절한 양의 물을 어떻게 결정할지, 가족과 회중과 사이에서 어떤 위치에 서있을지, 새내기 목사에게 중요한 작은 것들까지 배웠다. 개혁주의 전통의 성례전을 집전하는 것은 아름답고 매우 진지한 일이라고 배웠다. 진지함 중에 나타나는 은혜를 통해서 웃음이나 기쁨을 경험하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흑인 여성 교회 지도자로서, 많은 시간을 백인이 많은 부유한 회중에서 사역했다. 이 회중은 신학공부를 위해 내가 파견나갔던 교회였다. 이 곳을 오늘날 까지도 내 마음 속에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다. 부목사로 일하고 있을 때에, 유아 세례를 준비하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시간을 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세례 과정과 모든 것이 부드럽게 진행되도록 신경을 썼다. 익숙한 인종과는 다른 얼굴을 한 나를 어린아이가 편하게 여기도록 신경을 썼다. 나는 가족들과 앉아서 세례의 아름다움과 의미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가족들이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지 ” 예행 연습”으로 아기를 팔에 안아 보았다.
아이와 가족의 얼굴과 이름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동안 특별히 한 아이가 생각났다. 그 아이는 울거나 졸거나 하지 않고 호기심과 놀라움으로 가득차 있었다. 나는 계단을 통해 강단으로 올라가서, 적절한 자리에 서고, 옷에 달린 마이크를 켜고, 예식 소책자를 들고, 모든 것을 제자리에 두는 과정에 신경을 썼던 것을 기억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아이를 팔에 안자 아이가 미소짓고 옹알거리기 시작했던 것을 기억한다. 아이가 세례 때문에 매우 기뻐하고 있다고 웃으며 사람들에게 이야기 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나는 물에 젖은 손을 들어 아이 머리에 세 번, 성부 성자 성령 삼위 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올려 놓았다. 아이는 기쁨에 찬 소리를 내며 눈을 크게 뜨고 손을 흔들었다. 그 순간 나는 눈에 보이는 은총을 경험하였다. 바로 그 순간, 거기에서, 나는 예배에 온전히 참여하고 예배 안에 존재하도록 부름받았다. 예배를 진행하느라 산만해지지 않았다. 나는 우리에게 얹어진 하나님 손의 신비를 기억한다.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하시는 당신의 권능에 기쁘고 흥분되고 즐겁게 반응할 기회를 주신다.
V. 성례전이라는 습관
세례를 받으면서 기쁨에 가득한 아이의 이미지는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고 타인과 연결되도록 초대받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성례전은 신비와 예식과 주의 깊음과 은혜로 가득 차있다. 나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일깨우는 의도적인 습관을 실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 일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다. 나를 하나님의 살과 피에 합당하게 살도록 하는 습관들이 있다. 나는 그 습관들이 당신에게도 같은 일을 만들어 내기를 기도한다.
휴식.
성경은 우리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요구한다. 하나님이 쉬셨던 것처럼 쉬어야 한다는 것이다. 살면서 속도를 줄이거나 잠시 멈추는 것은 쉽지 않다. 과거 십년 동안 나는 안식일을 지키고 쉬는 영적인 실천이 하나님과 타인과의 더 깊은 관계를 경험하고 온전히 존재하고 깨어있게 해준다고 확실히 믿게 되었다. 안식일을 지키고 쉬는 법을 배우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성경과 신학 서적을 연구해보라. 당신이 시간을 어떻게 투자하는지 영적인 목록을 작성하게 하게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청하라. 자기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당신 영혼을 새롭게 하기 위해 고요한 물가에 앉아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지 물어보라. 하나님께 이 은혜로운 명령을 실천할 용기를 달라고 요청하라.
성찰.
안식일을 지키고 휴식하기 위해서 시간을 내었을 때, 당신 삶에는 성찰할 여유가 생긴다. 우리는 삶을 바라보고 일어난 일과 경험을 성찰할 시간을 내어야 한다. 성직자와 회중과 함께 일할 때, 우리는 종종 영적인 자서전을 만드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러한 시간 동안, 개인은 타임 라인을 만들고, 삶 안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신 일의 도표를 만들 것이다. 우리는 삶에서 경험한 “축복”과 ” 넘어짐”을 구분해서 이야기한다. 감사하고, 질문을 던지고, 숙고하고, 어려운 감정을 극복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꿈꾸는 것은 성찰을 통해서이다.
되찾기.
규칙적으로 쉬고 삶을 성찰하는 일을 실천하는 중,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로서 상상했던 자신을 되찾게 된다. 쉼과 성찰을 실행할 때, 잃어버렸거나 간과했던 우리 삶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되찾을 수 있다. 우리는 꿈과 은사를 되찾을 필요가 있다. 사랑과 삶을 향한 열정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 성경 안에 있는 약속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 상처받은 세상을 위한 희망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 이 모든 것을 되찾는 동안, 매일 아침 삶을 새로운 자비로 채우시는 부활의 주님께 가까이 가자고 타인을 초대할 수 있다.
저항.
쉼과 성찰과 되찾음을 실천하면서, 우리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의도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만드는 모든 것에 매일 저항하는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에수님을 따랐다. 내 경험상, 하나님과 타인에게 공격적인 것에 저항하는 것이 조금 더 쉽다. 이러한 습관을 통해 일상 속 유혹에 저항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세상의 수많은 바쁜 이들처럼 우리도 오락, 교회, 가족, 일 등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으로 미끄러지듯 빠르게 움직인다. 우리는 잠에서 깨어, 일을 하고난 후, 다른 이들과 만나고, 약간 일을 더 하면 밤이 된다. 그러면 그 다음날도 이를 반복한다. 기계적인 일상이라는 유혹에 저항하라. 하루에서 다음 하루로 미끄러지듯 넘어가는 삶에 저항하라. 영혼이 마비되는 것에 저항하라. 그리하여 당신 마음이 모두를 염려하고 돌보면서 부드러워지도록 하라.
VI. 토의와 질문
- 성례전으로 채워진 예배 전, 중간, 후에 어떻게 준비하고 참여할 것인가? 좀더 의도적으로 이러한 일을 실천한다면, 무엇이 바뀔까?
-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해를 잘 시키기 위해 어떤 단어, 그림, 노래, 이미지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인가?
- 당신은 안식일에 정기적으로 참여하여 하나님게서 당신을 잔잔한 물가에 두시도록 하는가? 규칙적으로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어떻게 일상에서 성례전의 삶을 살 수 있는가?
- 당신의 하루의 주기를 생각해 보라. 어떻게 일상생활 안에서 온전히 깨어 존재하는 것을 실천할 수 있는가?
- 성례전 때처럼 살기(온전히 존재하고 깨어있으며, 주의깊게 사는 것)가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영향을 주는가? 성례전처럼 사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당신의 말과 행동을 통해 다른 이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할 수 있는가?